[한국사 용어, 이젠 우리말로] 채진원 교수 "어려운 한자 역사용어 쉬운 우리말로, 본격 연구 시작할 시점"

2023.10.31 10:43:17

"어려운 한자식 역사용어를 우리말로 바꾸자"
"한자식 역사용어 한글로 올바르게"
"학계 적극적 참여와 대안제시 필요"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지난 10월 9일은 577돌 한글날이었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한글은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기념비적 유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이 자랑스러운 유산을 잘 가꾸고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최현배 선생도 ‘한글날 노래’ 가사 1절에서 “한글은 우리 자랑 문화의 터전/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라고 말했다.


우리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 글자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중국 한자를 썼다. 그러나 1443년 세종대왕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인 한글을 만들었는데 50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쓰지 않다가 지난 70여 년 동안 애써서 한글이 널리 쓰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한글이 제대로 빛을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과연 오늘날 공직자들과 국민들은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으로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면서 언어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긍정적이지 못한 게 사실이다. 우리말과 한글을 지키고 가꾸는 활동을 펼치는 국어운동단체인 ‘한글문화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2023년 1월부터 7월까지 중앙정부기관 보도자료 중 절반에 가까운 49%가 외국어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아주 씁쓸한 대목이다. 


한글 교육을 책임져야 할 교육부의 보도자료와 정책 명칭에도 외국어가 자주 등장한다는 지적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에듀테크(Edutech) 진흥방안’은 교육(Education)과 기술(Technology)을 뜻하는 외국어의 합성어를 썼다. 교육부부터 자성이 필요하다. 교육부는 공공언어의 사용을 강조하고 있는 ‘국어기본법’의 취지에 따라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이 국어책임관을 지정하고 알기 쉬운 용어를 사용하도록 장려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국어기본법’ 제14조(공문서등의 작성·평가) ①에서 “공공기관등은 공문서등을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또한 동법 제17조(전문용어의 표준화 등) ①에서 “국가는 국민이 각 분야의 전문용어를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하고 체계화하여 보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동법 제18조(교과용 도서의 어문규범 준수)에서 “교육부장관은 「초·중등교육법」제29조에 따른 교과용 도서를 편찬하거나 검정 또는 인정하는 경우에는 어문규범을 준수하여야 하며, 이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협의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정관계 및 학계는 물론 우리 모두가 공공언어의 사용이 전문용어로 더욱 확장하는 계기를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특히, 역사학계는 어려운 한자어가 많은 영역인 역사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이 획기적으로 진전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물론 그동안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확장의 봇물을 과감하게 터뜨리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 역사학계는 이미 1970년대부터 역사 교과서 용어인 마제석기(磨製石器)를 ‘간석기’로, 타제석기(打製石器)를 ‘뗀석기’로, 櫛文土器(즐문토기)를 ‘빗살무늬 토기’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2015년에는 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소장 주경철)가 9년에 걸친 대장정 끝에 2136쪽 분량으로 펴낸 <역사용어사전>(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를 출간한 바 있다. <역사용어사전>의 편찬팀 전임연구원 최진묵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인문한국(HK) 연구교수는 “집필 원고를 가다듬을 때도 무비판적으로 쓰고 있는 일본식 표현이나 최근 나라 밖의 학계 연구에서 보이는 낯선 용어들을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적절하게 바꾸려고 노력했다”라고 밝혔다.


어려운 한자식 역사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이란 용어가 있다. 아관파천을 우리말로 바꾸면 무엇일까?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하나의 의견으로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망명사건’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896년 2월 11일 새벽, 동트기 직전의 어둠을 타고 경복궁에서 가마 하나가 빠져나와 인근 러시아공사관으로 향했다. 가마에는 고종과 왕세자가 타고 있었다. 


외래어표기법 없던 시절에 고종실록은 그것을 ‘上與王太子移駐御于大貞洞 俄國公使館’이라고 전하고 있다. ‘임금과 왕태자가 대정동(지금의 서울 중구 정동) 아국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뜻이다. 여기 나오는 ‘아국공사관(俄國公使館)’이 지금의 러시아공관이다. 당시에는 러시아를 한자로 음역해 ‘아라사(俄羅斯)’라고 쓰고 읽었다. 줄여서 ‘아국’이라고도 했다. 아라사에서 머리글자를 따고 뒤에 ‘나라 국(國)’ 자를 붙여 만들었다. 외래어 표기규범이 없던 시절 외국 인명·지명을 적던 방식이다. 이를 음역어라고 한다. 일본에선 러시아를 ‘露西亞’로 쓰고 [ロシア(로시아)]로 읽었다. 이 한자를 다시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게 ‘로서아’다. 한국은 개화기 때 중국과 일본의 표기를 다 들여와 아라사, 로서아를 혼용했다.


나선을 비롯해 아라사든 로서아든 소련이든 다 지난 시절 우리말의 한 모습이다. 지금은 발음 그대로 한글로 ‘러시아’라고 쓰고 읽으면 그만이다. 실제 발음을 옮겨 적는 데 탁월한, 한글의 우수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아관파천을 우리말로 어떻게 적절하게 번역할 수 있을까? 학계의 치열한 토론과 합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역사용어의 대부분인 한자어에 쓰이는 한자를 누구나 이해하고 알기 쉽게 연구하고, 그 한자들을 우리말로 어떻게 바꿀시 있을까를 연구하는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시점이 되었다. 어려운 한자식 역사용어를 한글로 올바르게 쓰는 일에 학계의 적극적인 참여와 대안제시가 필요하다.  

 

# 채진원 교수는 2009년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민주노동당의 변화와 정당모델의 적실성〉이란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교수로 ‘시민교육’, ‘NGO와 정부관계론’, ‘정당과 선거’ 등을 강의했으며, 현재는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로 일하고 있다. 논문으로 〈시민정치의 흐름과 네트워크정당모델의 과제〉(2016), 〈시민권 보장의 차이로서 공화주의 논의: 민주주의, 민족(국가)주의, 세계시민주의와의 비교〉(2019) 등이 있고, 저서로는 《무엇이 우리정치를 위협하는가》(2016),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제왕적 대통령제와 정당(2022)》 외 다수가 있다.

김영섭 기자 ys@newsbe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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