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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랑을 담은 기타선율, 감성 포크 가수 '프리실라 안'

[웹이코노미=손시현 기자] 한국계 미국 포크 가수. 데뷔 앨범으로 애플 아이튠스 뮤직 스토어의 ‘Editor’s Music Choice’에서 금주의 가수로 초청된 실력파 싱어송라이터다. 시처럼 아름다운 노랫말과 잔잔하고 감성적인 어쿠스틱 사운드로 ‘제2의 노라 존스’로 불리는 프리실라 안(Priscilla Ahn)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This Is Where We Are〉를 발표했다. 그녀는 기존의 서정성에 과감한 전자 사운드를 도입했다. 노랫말 또한 변화가 있었다. 애잔하고 은유가 가득했던 전작들에 비해 자유롭고 직설적이다. 그러나 그녀가 한결같이 붙잡고 있는 것은 사랑. 기타 하나만으로도 세상에 온기를 전할 수 있는 사랑 충만한 프리실라 안을 만나보자. 이번에 새로 나온 신규 앨범, ‘This is Where We Are’을 소개해 주세요. 이번 앨범에는 새로운 ‘사운드’를 추가했어요. 이전과는 다르게 보다 일렉트로닉한 요소를 많이 넣었습니다. 마치 편안한 내 집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제 삶에는 정말이지 사랑이 충만해요. 아무래도 제가 3년 전 결혼했다는 사실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언제부터 음악에 관심을 두게 되셨나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죠. 어머니가 피아노를 잘 치셨고, 노래도 잘 부르셨어요. 그래도 음악을 할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보지는 않았어요. 제 꿈은 늘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어요. 대학에 갈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 인생에서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펜실베니아의 한 대학교 성악과 교수로부터 오디션을 봤어요. 그분을 만난 것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길을 걸어가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됐어요. 그분 덕분에 저는 드디어 ‘선택’이란 걸 할 수 있었고, 그런 선택을 한 것을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뮤지션들을 꼽으라면? 어린 시절, 아버지가 밥 딜런, 닐 영, 비틀스,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좋아하셨고 그 곁에서 그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어요. 처음 곡을 쓰기 시작할 때 그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어요. 특히 닐 영이 그랬습니다. 닐 영은 내 음악 인생의 우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는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고 진정한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그가 만든 노랫말들은 보통 의미심장한 게 아니예요.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 중 그는 단연코 최고죠. 고등학교 때는 리디오헤드 (Radiohead)와 애니 드 프랑코 (Annie de Franco)의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로스엔젤레스로 와서는 체트 베이커(Chet Baker) 같은 재즈 뮤지션의 노래들을 듣기 시작했어요. 최근에는 일렉트로 팝을 듣기 시작했는데 이번 앨범의 사운드에 확실히 큰 영향을 줬어요. 가수로 활동하면서 어머니의 결혼 전 라스트 네임을 쓰고 있다고 들었어요. 원래의 라스트 네임은 ‘하트랜프트(Hartranft)’에요. 철자도 어렵고 발음하기도 힘들죠. 이제껏 제 라스트 네임을 제대로 알아들은 이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가수 활동을 할 때 그 이름으로는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프리실라’라는 퍼스트 네임만 쓰고 싶지는 않았죠. 너무 허전한 느낌이 들어서요. 제 음악적 기질은 외가 쪽에서 나온 것 같아요. 우리 집에서 노래를 잘 불렀던 사람은 어머니였고, 제가 어렸을 때는 외할아버지가 자주 노래를 불러 주시곤 했어요. 그건 제게 큰 의미가 있었고 그래서 제 가수 인생에서 외가 쪽 라스트 네임을 쓰게 된 것 같아요. 주변 환경이 ‘프리실라 안’이라는 가수의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저는 아홉 살 때까지 외동으로 자랐어요. 그래서 늘 ‘혼자’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영향 탓인지, 저는 주어진 과제들을 독립적으로 하기 좋아했죠. 여러 명이 공동으로 하는 그룹 활동이 맞는 유형은 아니에요. 하지만, 어린시절 혼자있는 시간이 많았기에 상상력을 기르는 데는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저는 외모가 부모님 중 누구도 닮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나를 ‘케이 마트(K Mart)’에서 데려온 줄 알았죠(웃음). 자라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조금 겪기는 했어요. 하지만 그게 또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쳤죠. 고등학교 때는 압도적으로 백인이 많은 학교에 다녔는데, 그런대로 적응을 잘했어요. 제가 자란 곳은 필라델피아의 한 시골이었는데, 남북전쟁 때 남부 연합군 깃발이 달린 픽업트럭을 타고 등교하는 아이도 있었어요. 최근까지 제 노래의 많은 부분이 어린 시절 환경의 영향으로 ‘근본적인’ 주제가 많았어요. 그리고 저는 아시안 커뮤니티의 전폭적인 후원에 정말로 감사해요. 특히, 이곳 미국에서 그들로부터 받는 사랑이 크죠. 매우 감사드려요. 최고의 블루스 뮤지션들과 투어 공연을 가졌는데, 투어 공연을 다닐 때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요? 유럽의 어느 축제에서 공연할 때의 일이었어요. 총 33일간의 투어 일정이었는데, 그 33일 중 30일은 비행기를 타야 했습니다. 엄청난 장비와 가방 때문에 보통 힘든 게 아니었어요. 투어가 끝날 무렵에는 프랑스의 찰스 드골 공항에서 발이 묶이기도 했어요. 공항 직원들이 우리를 어느 방에 몰아넣고 아무 데도 못 가게 했어요. 목적지인 핀란드행 비행기에 대해 일체의 정보를 얻을 수 없었어요.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죠.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매다 눈물까지 났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소리 질렀어요.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젠 내가 왜 핀란드를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이렇게요. 그러자 남편이 진정하고 ‘집’을 떠올릴 수 있는 음악을 찾아 들어보라고 했어요. 그 말에 저는 ‘드라소울(De La Soul)’의 음악을 들었고, 그러다 드디어 우리가 탈 비행기를 찾았어요. 핀란드에 도착하고 공연 주최자로부터 일정을 소개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제 다음 순서가 ‘드라소울’이 아니겠어요? 그것도 두 시간이나! 제게는 마치 기적처럼 느껴지는 일이었어요. 우리 공연 순서가 끝나고 일행과 함께 ‘드라소울’의 공연을 지켜봤습니다. 그때 핀란드는 한여름이라 밤새 해가 떠 있었어요. 새벽 1시에도 햇빛을 받으며 그들의 공연을 보았죠. 지금 생각하면 참 기막히게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보다 자신을 믿, 자기가 무엇을 하든 꾸준히,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진심을 다해 그것을 좇아가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 또한 중요해요. 어떤 뮤지션들은 타인으로부터 피드백을 얻어 그걸 바탕으로 자신의 음악을 고쳐 나가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위험할 수도 있어요. 그러다가는 자기만의 목소리와 자신만의 색깔을, 그리고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까지 모두 잃을 수 있어요. 이는 제가 특별히 조심하는 부분입니다. 자신이 하는 자신의 것을 하고, 음반이 많이 팔리는 뮤지션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모방하려 들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중에 자신이 사랑하는 방식으로, 자기 음악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WD매거진팀 webeconom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