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화섭 칼럼] '속풀이 해장국'은 없었다…해장국 변천사와 한국 술문화

2022.06.26 12:54:36

호남 사투리 '해장'은 새벽시간 가리켜
'해장국'은 장꾼의 새벽 작업후 간식
국어사전 '해정(解酲)'도 '해장'과 상관없어
"해장국은 해장에 장꾼들이 먹는 국밥"
"전세계서 속풀이 해장국은 한국밖에 없다"
"속풀이 해장국으로 바뀐 건 60년대 말 70년대 초"
"삐둘어진 술문화가 해장국집 폭증의 원인"
"폭탄주는 이제 그만, 간에 좋은 술을 마시자"


[웹이코노미 송화섭 객원논설위원] 한국의 성인 남자들 가운데 해장국을 안 먹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 해장국을 먹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속풀이 해장국이라고 대답한다. 속풀이 해장국은 엊저녁에 마신 술이 아침까지 깨지 않아서 숙취(宿醉)를 풀어주고 뱃속의 메슥거림을 해소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의 음식이다. 숙취는 엊저녁에 마신 술이 이튿날까지 술이 깨지 않는 취기를 말하고, 메슥거림은 엊저녁에 마신 술이 되넘어올 것 같이 뱃속이 심하게 울렁거리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숙취 현상은 누구나 한번 정도 경험하였을 것이다. 술마신 뒤에 해장국집을 찾고 숙취음료를 마신다고 숙취가 해결되는 것일까. 이미 간에서 술의 해독 기능이 떨어져 숙취 상태인데, 해장국으로 숙취가 해소될 수 있는 것인가. 결코 아니다. 해장국은 숙취 해소의 심리적 치유일 뿐이지 해독 성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전통음식가운데 해장국이라는 음식은 없다. 대개 식재료에 따라 음식명이 생겨나는데, 해장은 식재료가 아니다. 해장국은 시레기국, 우거지선지국, 콩나물국, 올갱이국, 황태국 등을 통틀어 부르는 명칭일 뿐 전통음식의 명칭은 아니다. 해장국은 문화적 용어로서 국어대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국어대사전은 '해장국'을 '해정탕'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사전에서 풀 '해(解)' , 숙취 '정(酲)'으로 구성된 '해정(解酲)'은 '해장'의 본딧말이라고 소개돼 있다. 하지만 '해장'과 '해정'은 전혀 상관성이 없다. 

 

해장국은 일본, 중국에도 없다. 전세계에서 속풀이 해장국을 먹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왜 한국인들은 해장국을 먹는 것일까. 문제는 술의 품질이다. 좋은 술은 간에서 해독이 빠르다. 숙취가 오래 간다는 것은 좋은 술이 아니다. 경험상 증류식 소주는 빨리 깨지만, 희석식 소주는 취기가 오래간다. 희석식 소주는 값이 싸고 양주에 비하면 저급한 소주로 알려졌다. 술은 뒤끝이 깨끗한 술이 좋은 술이다.  

 

해장국을 한 단계 깊이 들여다보자. '해장'은 호남의 사투리, 즉 방언(方言)이다. '해장'은 ‘해뜨기 이전의 시간’, ‘아침식사 이전의 시간(食前의 時間)’을 말한다. 전주 남문밖 시장은 조선시대 이래 삼남지방에서 최대 규모의 시장이었다. 전조후시(前朝後市)의 전라감영이 말해준다. 조선후기 5일장이 정착하면서 장꾼들이 등장하였다. 장터에는 물품을 나르는 장꾼들로 붐빈다.

 

도매시장에서 지게나 손수레를 사용하는 장꾼들이 가장 바쁠 때가 새벽 1시부터 4시경까지다. 장꾼들은 새벽 경매를 위해 농산물, 청과물 등 물품을 운송하느라 이마에 구슬땀이 맺힌다. 새벽 5시경 경매가 끝나고 물품 정리가 끝나면 장꾼들은 허기진 배고픔을 해결하려고 장시 근처에 문을 연 국밥집을 찾는다. 따뜻한 콩나물국밥과 막걸리 한잔으로 요기(療飢)하고 귀가한다. 이처럼 해장국은 장터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장꾼들이 해뜨기 이전에 허기짐을 해소하려고 먹는 간이식(簡易食)에서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해장국은 해장에 장터에서 장꾼들이 배고픔을 해소하는 국밥이었다. 해장국은 채반의 식은밥 한 덩이를 뚝배기에 넣고 따뜻한 국물을 토렴식으로 만들어 내놓는 국밥이다. 장꾼들의 요기용 해장국이 술꾼들의 속풀이 해장국으로 바뀐 것은 60년대 말 70년대 초다. 60말70초에 미국에서 미니스커트, 청바지, 팝송, 록밴드와 록엔롤, 고고, 블루스, 트위스트 등 이른바 '양키문화'가 들어오면서 도시 중심의 호텔에 나이트클럽이 생겨났다. 미니스커트와 청바지를 입은 젊은 남녀들이 나이트클럽에서 밤새 술마시고 록밴드에 맞춰 트위스트 춤을 추던 광란의 밤 문화가 성행했다.

 

당시에는 야간통행금지가 시행되던 때였다. 나이트클럽에서 밤을 지새며 술과 춤, 노래의 밤문화를 즐기던 젊은이들이 새벽 4시 통금이 해제되자 숙취와 메슥거림을 해소하려고 새벽 국밥집을 찾으면서 호텔나이트클럽 주변에 해장국집이 등장한다. 서울 종로구 청진동 일대 서울호텔 주변에 해장국집이 성업했다. 해장국집이 장터를 떠나 호텔 나이트클럽 주변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본격적인 속풀이 해장국이 등장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해장국집은 나이트클럽 주변에 집중해 있었는데, 지금은 도심 어느 곳에서나 해장국을 파는 식당 간판이 많이 눈에 띈다. 

 

요즘에는 나이트클럽의 밤 문화가 시들해졌는데, 왜 해장국집은 늘어나는 것일까. 역시 삐둘어진 술마시는 습관이 문제다. 70년대말 80년대에 군부정권 하에서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군사문화가 폭탄주를 탄생시켰다. 폭탄주는 조직관리가 필요한 국가기관, 기업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확산했다. 고급 양주와 맥주를 섞어 폭탄주를 마시는 룸싸롱이 덩달아 활개쳤다. 룸싸롱은 폭탄주의 진원지였다. 나이트클럽이 룸싸롱으로 진화했다. 폭탄주는 조직관리와 기세 싸움 수단으로 유효적절하게 활용됐다. 공무원과 각 기업에 확산하면서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저급한 폭탄주 문화가 생겨났다. 

 

요즘 음식점에서 술을 요청하면 아예 소주와 맥주를 함께 내놓고 폭탄주를 권장한다. 족보도 없는 폭탄주가 한국의 밤을 습격한다. 밤마다 도심에는 폭탄주 맞은 취객들이 비틀거리고 쓰러진다. 간에서 하나의 술도 해독하기 힘든데, 소주와 맥주를 섞어 폭탄주를 마시니 간(肝)이 폭탄을 맞은 그로기(groggy) 상태가 된다. 폭탄주는 간에 폭탄이다. 그래서 더 많은 해장국집이 성업하게 됐다. 해장국이 폭탄 맞은 간을 치유할 수는 없다. 빨리 깨는 술이 좋은 술이다. 폭탄주는 이제 그만, 간에 좋은 술을 마시자.   


                                       

관리자 기자 kimlily@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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