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이코노미=조경욱 기자] 지난해 4분기 이마트가 또 다시 적자를 기록했다. 창사 이래 첫 번째 적자를 기록한 2분기에 이은 두 번째 마이너스 성적표다. 위기에 직면한 이마트는 지난해 10월 6년간 회사를 이끌어온 이갑수 사장을 내쳤고 주요 임원도 대대적인 물갈이에 들어갔다. 인적쇄신을 외치는 모양새지만 일각에서는 최종 결정권자인 정용진 부회장이 임원들에게 책임론을 전가했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오고 있다.
지난 13일 이마트는 연결기준 지난해 영업이익이 1507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액은 19조629억원으로 전년 대비 11.8%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67.4% 급감했다. 이마트가 지난 2011년 5월 신세계로부터 분할된 후 가장 낮은 영업이익이다. 4분기만 놓고 볼 시 매출 4조8332억원, 영업손실 100억원이다.
◆ 정용진, 10년 전부터 강조한 온라인 사업 '적자의 늪'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0년 1월 정 부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사업에서 반드시 업계 1위의 위치를 달성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이에 맞춰 2012년 10월 이마트몰과 신세계몰의 사업부를 통합했고 2014년 1월 통합 온라인몰 SSG닷컴을 출범시켰다. 2018년 12월에는 SSG닷컴을 이마트로부터 분할 신설해 새로운 계열사로 탈바꿈했다.
온라인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본 정 부회장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오히려 정확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34조5830억원으로 2010년(25조2030억원) 대비 5배 이상 성장했다.
하지만 이같은 온라인쇼핑 시장의 성장 속에서 SSG닷컴의 실적은 6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누적된 영업손실만 2600억원이 넘는다. SSG닷컴 적자의 주요 원인은 광고를 비롯한 마케팅 비용 지출이다.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한 밑바닥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SSG닷컴의 거래액(GMV)은 2014년 1조910억원에서 2018년 2조4009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으며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19.7% 성장한 2조8732억원을 기록했다. SSG닷컴은 이러한 성장세를 이어가 2023년까지 1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SSG닷컴의 외형적 성장이 언제 흑자로 이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온라인 쇼핑 시장은 이베이코리아, 11번가, 쿠팡, 위메프, 티몬 등 기존 강자들부터 HMR(Home Meal Replacement, 가정간편식) 분야를 필두로 한 마켓컬리, B마트(배달의민족) 등 신생 기업들까지 가세해 경쟁이 더욱 가열되는 양상이다. 신세계그룹의 영원한 라이벌 롯데도 온라인 사업에 3조원을 투자해 2022년 매출 20조원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경쟁사들과의 치킨게임 와중에서 SSG닷컴의 덩치가 커진 것은 사실이나 다른 기업들 역시 투자 확대를 통해 출혈 경쟁을 지속하고 있어 간극이 쉽게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다.
◆ 마트 외 사업 강조...그 결과는 전문점 '줄폐업'
정 부회장은 과거부터 "앞으로 유통업의 경쟁 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전통 방식의 대형마트를 고수해서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그는 온라인 사업 외에도 부츠, 삐에로쑈핑, 일렉트로마트 등 전문점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거두지 못한 채 판단 착오를 거듭한 오너라는 오명만 남기게 됐다.
이마트의 위기는 주력 마트 사업을 내팽개치고 성급하게 전문점 시장을 확대한 데서 기인했다. 헬스&뷰티(H&B)스토어 부츠의 경우 영국 월그린부츠얼라이언스(WBA)와 합작해 2017년 5월 국내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2년이 조금 넘은 지난해 7월 기준 매장 33개중 절반이 넘는 18개가 폐점해 사실상 철수 수순을 밟고 있다.
2018년 처음 문을 연 삐에로쑈핑도 기대와 달리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채 지난해부터 순차적 폐점에 나섰다. 일본의 할인 잡화점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했지만 단순히 외형을 따라하는 것에 급급했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남성들을 타깃으로 한 체험형 가전 매장 일렉트로마트도 지난해 12월 판교점이 폐점했다. 일렉트로마트는 정용진 부회장이 기획 단계에서부터 직접 주도해서 만든 가전전문점으로 현재 44개의 매장이 남아있다. 이마트는 일렉트로마트를 꾸준히 확장해 나가겠다는 입장이지만 유통업계에서는 다른 전문점처럼 수익성 개선을 위한 구조조정에 돌입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지난해 이마트의 전문점 영업손실은 전년보다 124억원 확대된 856억원을 기록했다. 작년에만 총 59개의 전문점이 폐점했으며 올해도 지속될 전망이다.
◆ 직원 성과급은 DOWN...오너일가 배당금은 UP
이마트가 지난해 최악의 성적표를 기록한 가운데 정 부회장은 이갑수 대표를 포함해 임원 11명을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당초 이 사장은 6년째 이마트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올해 3월까지 임기가 예정돼 있었지만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일찌감치 자리에서 내려왔다.
올해 이마트 직원들의 성과급도 삭감됐다. 성과급은 직급에 따라 전년 대비 최소 20%부터 최대 45%까지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실적 악화에 직원들의 허리띠부터 졸라맨 것이다. 이마트는 전년에도 성과급을 줄였는데 이번 성과급 삭감 폭은 역대 최대 규모다.
일각에서는 사실상 주요 사업을 총괄하고 지도한 정 부회장이 직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점을 비롯한 신규 사업을 추진할 때는 정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 자신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지만 막상 성과가 없자 인적쇄신을 강조하며 경영진부터 바꿨다는 이유에서다.
직원들의 성과급은 삭감된 반면 지분율을 늘린 정 부회장의 배당금은 오히려 늘어났다. 이마트의 결산 배당은 전년과 동일한 주당 2000원으로 결정됐다. 지난해 정 부회장은 지분 9.83%에 대한 배당금 54억8080만원을 수령했다. 올해에는 지분이 10.33%로 늘어 수령액이 57억6080만원으로 증가했다.
이에 마트산업노동조합은 지난 10일 논평을 통해 “수익성 악화로 노동자들의 성과급은 삭감된 반면 정용진 부회장 등 오너일가에게 돌아가는 배당금은 되레 늘었다”며 “삐에로쑈핑에 이어 부츠도 사실상 폐업 수준을 밟고 있는 등 정용진 부회장이 주도하는 사업마다 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을 망친 건 정 부회장인데 왜 책임은 근로자들이 져야 하나”며 “정용진 부회장 등 오너일가에게 책임의식이라는 것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조경욱 웹이코노미 기자 webeconom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