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웹이코노미 문화기획 ] 안재영 객원문화대기자 = 전시장을 들어서자 무기력한 표정의 토끼 한 마리가 화면 속을 누빈다. 선명한 색채, 부드러우면서 단단한 선을 통해 위태로운 일상을 그려냈다. 필자는 소월로 화이트스톤 갤러리의 아루타 수프(Aruta Soup) 전시 주제, 잠들지 않는 도시, 불면증의 도시《INSOMNIAC CITY》를 바라보며 사진작가인 빌 헤이즈(Bill Hayes)를 크로스오버했다. 빌 헤이즈는 지적 탐구심과 음악과 사진 등 예술 전반에 대한 교감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면의 밤을 엿보인 불면증의 도시(Insomniac City)의 저자이다.
아루타 수프(Aruta Soup)는 일본 만화 문화, 영국 특유의 블랙 유머 그리고 스트리트 컬처를 자유롭게 혼합하여 표현하는 작가로 이스트 런던에서 그래피티, 클럽 문화를 흡수하여 현재의 스타일을 구축했다. 서울 전시는 도쿄 신주쿠의 밤거리에서 영감을 받은 회화와 네온 설치 작업을 통해, 작가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표출했다.

그는 런던에서 돌아와 도쿄의 신주쿠에 거주하며 그곳을 배경으로 작업해 왔다. 전시 제목 ‘Insomniac City’ 역시 번화가 신주쿠, 그중에서도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환락가 가부키초를 반영하고 있다. 그의 전시는 신주쿠, 가부키초의 풍경 그리고 그곳을 오가는 인간군상과 저마다의 감정 혹은 내면, 유머와 상처, 동시대성과 환상 등이 한 화면에 공존한다. 아루타 수프는 환락가로 유명한 가부키초를 배경으로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끝을 알 수 없는 깊이와 공허를 품은 도시의 공기, 그리고 그 안에서 욕망과 불면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배경이다. 아루타 수프는 캐릭터인 ‘ZERO(토끼)’를 통해서 회화, 네온, 그리고 그래피티적 감각이 혼합된 시각 언어로 재구성했다.
토끼 ‘ZERO’는 작가 자신을 투영한 모습이자 상처와 치유의 상징이다. 그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 ‘ZERO’는 검은 옷을 입고, 발에는 붕대를 감고, 손에는 흰 장갑을 끼고, 머리에는 깁스를 한 채,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다. 처음에는 자아 없이 인간을 흉내 내던 존재였지만, 시간과 경험을 거치며 친구를 만나고 밤거리를 산책하고 실험을 즐기며 고유한 세계를 형성해 간다. 아루타 수프는 ZERO를 혼란과 상처 속에서도 변화와 재생을 반복하는 존재로 설정한다.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들며 다양한 장면 속에서 캔버스에 등장하는 ZERO는, 혼돈과 폭력이 넘치는 세계에서 치료와 재생을 반복하며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의 상징이다.

그의 작업은 치밀한 러프 작업이다. 연필과 펜으로 스케치를, 디지털상에서 색채의 세계를 만든다. 선, 구도, 색채라는 중요한 세 가지 요소를 여러 번 시험하고 고민하면서 구상이 완성되면, 비로소 캔버스와 마주하게 된다. 그의 작업은 강렬한 색채 대비가 특징이다. 파스텔 색조의 부드러운 색감부터 네온 색상의 강렬한 대비까지, 다양한 색채를 활용해 감정을 표현한다. 파란색과 분홍색 꽃들이 어우러진 작품은 마치 꿈속 세계를 보는 듯한 몽환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아루타 수프는 날카롭지만, 유쾌한 시선으로 동시대의 도시성과 인간성을 담아내고 있다. 복잡하게 얽힌 사회와 사람들의 심리 상태, 시대적 이슈에 대한 논의를 상징적인 캐릭터를 통해 기술한다. 필자와 마주한 그의 그림 중에, 화폭에 그려진 민트(mint) 색상의 꽃 사이에 붉은 토끼가 있는 작품이 강렬했다. 어쩌면, 아루타 수프(Aruta Soup)는 환하게 빛나며 곱고 아름다운 색감 좋은 꽃보단 콘크리트 사이에 핀 인간적인 잡초의 모습을 원하는 것은 아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