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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섭 칼럼] 추석 조상차례상에 일본 청주를 올려야 하나 

 

전통마을마다 세시에 맞춰 마을공동제사를 지낸다. 정월 대보름 마을굿을 지낼 때에 마을제사(洞祭)를 주관하는 제관과 화주를 선출한다. 동제 3일전 화주집에 금줄이 걸리고 황토가 뿌려지면 화주는 제물을 준비한다. 제일 먼저 마을수호신에게 올릴 조라술이라는 신주(神酒)를 빚는다. 신주는 찹쌀로 죽을 쑤고 누룩을 넣어서 항아리에 봉해 놓으면 하룻만에 술이 된다. 이 조라술이 맑은 청주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신에게 바치는 술은 집에서 직접 빚은 청주(淸酒)를 올리는 관행이 지속되어 왔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추석은 중추절의 명절이다. 한국의 명절가운데 설과 추석은 대표적 명절이다. 한국인들이 설과 추석을 중히 여기고 전승해오는 동력은 오로지 조상숭배이다. 한국의 조상숭배는 ‘조상대대로’라는 계세의식(繼世意識)이 매우 강렬함을 보여준다. 추석에 가족과 친척들이 조상의 무덤에 가서 합동 참배하는 관행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조상숭배의 관행이다. 설과 추석에는 집집마다 조상의 차례상에 올릴 신주를 빚는 게 경건한 의식이었다. 신주는 찹쌀과 누룩을 섞어서 만드는 발효주이다. 청주 즉 맑은 술은 인간이 신에게 올리는 최고의 예의이며, 신의 술을 음복하는 신인일체의 계승을 미풍양속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마시는 청주 양조법을 들여와 일본식 청주를 한국에 뿌리 내렸다. 일본의 맑은 술 청주를 정종(正宗)이라고 부른다. 근래까지도 일식집에서 정종대포를 마실 수 있었다. 해방이후에는 일본의 청주는 한국 청주의 자리를 빼앗았다. 한국의 청주가 설자리가 없어졌다. 국세청이 관장하는 주세법 제5조 주류의 종류에 한국의 발효주를 청주, 약주, 탁주, 맥주, 과실주로 분류하고 있다. 주세법의 청주는 일본식 청주인 정종이 자리잡고, 한국의 전통 청주는 약주로 취급받았다. 청주는 청주일뿐 약주는 아니다. 우리나라 청주가 일본식 청주에 밀려 청주라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약주라고 부르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일본 정종을 한국식 청주로 착각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청주는 일본식 청주와 양조 방식에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청주는 일본 청주보다 비교적 탁하다. 탁할지언정 한국 민족 고유의 발효술인 청주가 있는데, 일본 청주에 선점당한 것이다. 우리나라 청주가 청주로 불려지지 못하고 약주로 설움을 받고 있다. 우리들은 조상대대로 조상신들에게 청주를 올리는 관행이 있었지만, 올해 추석에도 조상차례상에  일본식 청주를 제삿술(祭酒)로 올려야 하는 웃지 못할 코미디같은 일이 벌어질 듯하다. 더 이상 조상들에게 낯부끄러운 짓은 하지말자. 일본강점기에서 해방을 70여년이 훨씬 지났건만 아직도 술 만큼은 일제강점기 식민통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명절인 추석에 우리나라 청주 대신에 일본 청주를 제사상에 올려야 하는 슬픈 현실에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분노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문제다. 일본 청주를 조상제삿상에 제삿술로 올리는 1차적인 책임은 국세청의 주세법에 있다. 이것은 분명 민족 주권(酒權) 침해 문제다.  

 

어찌 청주만 그러하겠는가. 소주업계에서도 일본의 갑류소주, 즉 희석식 소주가 주류업계를 장악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소주 증류주가 생산되고 있는데도, 주세법 제5조에는 소주와 증류식소주를 따로 분류해놓고 있다. 소주는 증류식소주가 정통소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주류업계는 일본식 희석식소주를 대량생산 판매하느라 정신이 없다. 국세청은 우리나라 전통 청주와 전통 소주가 시중에 유통될 수 있도록 주세법을 고쳐야 한다. 술의 선택권은 백성들의 몫인데, 국세청이 쥐고 있다. 국세청은 오로지 세수(稅收)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 전통명절 설과 추석에 식민통치 시기의 술을 차례상 제삿술로 올리는 슬픈 현실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설과 명절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도 우리나라 백성들은 전통소주인 증류주와 전통청주를 마시기도 어렵고 접하기도 쉽지 않다. 국세청이 일반주와 전통주를 분류해 놓은게 문제다. 국세청은 주권(酒權)이 백성들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주세법을 개정하고 전통주의 유통 규제를 철폐하기 바란다. 언제까지 일본 청주를 조상제삿상에 올려야 할 것인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주권(主權) 독립은 주권(酒權) 독립에 있다. 온 나라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서 주권독립운동(酒權獨立運動)을 벌여야 하겠는가.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술이 일본의 희석식 소주만 있겠는가. 국민대중주인 막걸리도 희석식이다. 막걸리는 막걸러서 만들어진 술이라 하여 생겨난 이름이다. 전통적인 쌀술(rice wine)의 제조 방식을 살펴보면, 숙성된 발효주의 항아리에서 제일 먼저 떠낸 청주는 제주(祭酒)로 봉해놓고, 나머지 청주는 집안 어른들의 반주(飯酒)로 밥상에 오른다. 용수에서 청주를 떠내고 난후, 술지게미(술찌꺼기)를 체에 넣고 물을 부어가면서 걸러낸 술이 탁주다. 탁주가 막걸리(막 걸러낸 술)이다. 탁주(濁酒)는 청주보다 탁하지만 영양가는 높다. 탁주는 예부터 들일하는 농부들에게 보내져서 농주(農酒)라 불렀다. 탁주를 걸러 만든 술지게미는 다시 설탕을 넣고 끓여서 모주라는 술을 만든다. 그래서 모주를 단술이라고 불렀다. 모주를 끌여낸 뒤 남은 술지게미는 돼지먹이로 쓰였다. 막걸리는 한국인의 지혜에서 나온 술이지만 청주 다음의 2급술이다. 농주

 

그래서 쌀술 품질은 일청주, 이탁주, 삼모주로 등급을 매길 수 있다. 한국 청주는 일본 청주에 자리를 빼앗긴 뒤 약주라는 이름으로 밀려났고, 막걸리(탁주)가 양조장에서 대량 생산되면서 본래의 자리를 잃어버렸다. 이제 양조장의 막걸리는 청주와 탁주를 분리하지 않는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의 청주는 서럽다. 그래도 조상대대로 내려온 집안의 술들이 상품화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짓눌려온 한국의 청주가 부활의 몸짓을 시작하였다. 서천 한산소곡주, 당진 면천두견주, 순창 삼해백일주, 청주 청명주, 문경 호산춘, 경주 법주 등 전국의 이름난 발효주들이 당당하게 한국 청주의 이름을 내 걸었다. 한국 청주의 향은 누룩향이다. 올해 추석에는 온돌방에 병풍을 펼쳐 놓고 차린 조상차례상에 연노랑 술빛이 신비스럽고 누룩향 그윽한 전통 청주를 제삿술로 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