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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처·공공기관

[함광진 행정사의 국회 입법 속살 ⑧] 공무원이 아닌 의원이 일하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

[웹이코노미=함광진 행정사] 국회에는 소위 딴지 거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공무원이 있다. 이들은 국회 상임위원회에 소속되어 국회의원이나 정부가 내놓는 입법안과 예산안 등을 사전 검토해 잘못된 점을 지적하거나 대안을 제안한다. 또 정부가 시행하거나 추진하는 각종 정책의 문제점을 파헤친다. 시험을 통해 선발된 공무원이 선출된 권력인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권한을 그야말로 능숙하게 요리한다. 국회의원이 아니면서 국회의원에 버금가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국회법 제42조에 따라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근무하며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 등을 지원하는 국회 소속 공무원이다. 직위에 따라 수석전문위원·전문위원·입법심의관·입법조사관 등으로 나뉘는데 통칭해서 ‘전문위원’ 또는 ‘입법조사관’이라 불린다. 수석전문위원은 행정부의 차관보(1급)와 같은 대우를 받고 전문위원은 국가공무원 일반직 2급, 입법심의관은 2급 또는 3급, 입법조사관은 3급부터 5급 등에 해당한다. 이들의 권한은 그야말로 막대하다. 국회법에 따라 기본적으로 상임위원회 회의 진행을 돕는다. 법률안·예산안·청원 등 안건에 대해 검토한 후 회의장에서 서면 또는 구두로 보고한다. 아울러 국정감사, 국정조사, 그 밖의 소관 사항과 관련해 검토 보고하고 관련 자료 수집·조사·연구를 수행한다. 또한 상임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정부나 다른 행정기관 등에 자료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 검토보고서는 회의 안건에 대한 심사 방향을 제시하고 관련된 정보를 국회의원에게 제공해 보다 전문적이고 능률적으로 안건을 심사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국회의원이 국회 의안과에 제·개정할 법률안을 접수하면 소관 상임위원회로 전달되어 소속 위원들에게 심사를 받는다. 구체적으로는 상임위원회의 법안상정 전체회의가 열리면 법률안을 대표발의한 의원이 참석해 구두로 제개정법률안의 제안취지와 주요 내용에 대해 간략히 제안설명을 한다. 대개는 서면으로 제안 설명을 대체한다. 이후 해당 법률안에 대해 전문위원이 검토보고를 하면 법률안의 당부와 문제점에 관해 의원들이 토론하거나 정부부처 장·차관들에게 관련 사항에 대해 정부의 입장을 묻고 답하는 식으로 상임위원회 회의가 진행된다. 일례로 필자가 일하던 의원실이 도로에 방치된 동물 사체 처리 방법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었다. 당시 개정안 담당 입법조사관은 ‘부정적인 의견’으로 검토보고를 했다. 현행법상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발생한 동물사체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처리해야 하나 인력 부족 등의 사유로 도로에 장시간 방치되기도 하고 이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의원실에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동물사체를 자원하는 사람이 수거·처리할 수 있도록 하고 해당 수거 처리를 한 사람에게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근거규정을 마련하고자 했다. 이러한 개정법률안에 대해 입법조사관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동물 사체의 수거 처리 문제는 수거인력 확충, 무단투기 단속 강화 등 현행법 체계 내에서 사업 관리 강화를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면서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상금을 지급할 시 수거된 동물의 사체가 도로 위에서 방치된 것을 수거한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무분별한 수거 문제 발생이 우려된다”라는 검토의견을 내놨다. 개정안은 심사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결국 임기 만료돼 폐기됐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한 정부의 3차 추경 사업에 대한 검토보고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정부는 주소득자의 사망·실업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운 저소득층에게 긴급생계비 등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빈곤 위기가구를 위한 긴급 생계지원비 및 긴급복지업무 보조 인력 채용 인건비로 총 526억8900만원을 증액편성했다. 이에 대해 입법조사관은 “금년도 1월부터 5월까지 긴급복지예산의 실집행률이 28.8%에 불과해 추경 예산의 연내 집행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위기가구를 적극 발굴하고 긴급지원기준 완화를 통해 지원대상자를 확대함으로써 예산의 집행가능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라고 검토보고 했다. 입법조사관의 검토보고가 국회의원이나 정부가 발의한 법안에 대한 잘못된 점을 지적하거나 합리적 대안을 제안하는 순기능이 있지만 검토보고서에 부정적인 의견이 실리면 그 법안은 원안대로 혹은 통과조차 안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예산안에 대해서도 부정적이거나 감액 의견이 실리면 그 예산은 삭감될 확률이 높다. 때문에 정부부처 공무원들은 검토보고서가 나오기 전 담당 입법조사관을 찾아가 법안 취지를 설명하기도 하고 이미 나온 지적사항의 삭제를 요청하고 어려움을 읍소하기도 한다. 검토보고서에 담긴 내용 때문에 국회의원 보좌진과 입법조사관 사이에 간혹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국회의원이나 보좌진들은 본인들이 추진하는 업무 외에 동료 의원이나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나 제·개정법률안에 대해 개별적으로 문제점을 파악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다 보니 입법조사관이 작성한 검토보고서를 통해 법안의 주요내용이나 문제점을 파악하게 된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거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국회의원이나 정부는 검토보고 의견에 따라 법안을 통과시킬지 부결시킬지 결론 내린다. 국회의원은 상임위원회에서 정부의 업무보고, 법안심사, 국정감사 등을 통해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한다. 이 과정에서 검토보고서는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입법조사관의 검토보고가 정부부처나 이해관계자에 의해 왜곡되거나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채워지고 이를 토대로 국회의원의 심사가 이뤄진다면 대정부 감시 견제 기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끔 우리는 정부 공무원들이 국회 회의실 앞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는 풍경을 뉴스를 통해 보게 된다. 회의에 참석하거나 국회의원에게 업무 설명을 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담당 입법조사관에게 업무보고를 하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상임위원회 소속 전문위원과 입법조사관 외에도 국회 소속 입법조사처와 예산정책처에서도 국정감사 정책자료집과 국가 예결산 분석 및 사업평가서를 작성한다. 공무원들은 상임위원회 소속 입법조사관 외에도 입법조사처와 예산정책처 소속 입법조사관에게까지 업무보고를 한다. 정부부처 공무원 입장에서 국회 소속 공무원은 분명 ‘갑’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심사권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상임위원회에서 국회의원과 정부가 토론해서 어렵게 합의한 법안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발목잡는 잘못된 구조와 관행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폐지하고 국회의장 산하인 국회사무처나 입법조사처 등에 별도의 체계·자구 검토기구가 맡도록 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해야 할 일을 공무원에게 맡기는 것은 국회의원이 본연의 의무를 져버리고 또 하나의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을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정부부처 공무원들이 부리나케 드나들고 줄을 서서 업무보고하는 진풍경이 벌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체계·자구 심사 역시 기존 상임위원회에서 법안 심사를 하면서 동시에 수행하면 될 일이다.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게 정당의 존재 이유이고 국회의원의 본분이라고 연일 떠들면서 정작 할 일은 공무원에게 떠밀고 있다. 입법정책의 결정은 선출직인 국회의원의 고유 권한이다. 시험출신 공무원이 대신할 일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일하는 국회가 돼야 한다. 함광진 행정사 webeconom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