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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언어와 한글기획 전문가칼럼] 목지선 경상국립대 교수 "공공 언어, 공익인가 공해인가?"

경상국립대학교 인문학연구소
목지선 학술연구교수

                           

           


얼마 전 공공 언어의 현황과 실태에 관해 쓴 논문에서 공공 언어의 현주소에 대해 “공익 언어(公益 言語)인가? 공해 언어(公害 言語)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글을 보고 쓴웃음이 났다. 공공 언어는 공공성을 가진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에게 두루 관계되어 사회 전체의 필요성과 사회 전체의 이익에 직결되는 것을 공공성이라 본다면 공공 언어는 마땅히 통합과 공익의 개념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공해 언어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이 필요한 지점에 공공 언어가 위치해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공공 언어는 넓게 본다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막론하고 사회구성원 누구나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를 의미하지만 좁은 의미나 가장 공적인 유형의 언어를 꼽는다면 공공 기관에서 사용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국어기본법](2005) 14조에는 “공공 기관 등은 공문서를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는 점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숱한 논문이나 칼럼, 기획 기사 등에서도 공공 기관의 언어는 누구나 쓰기 쉽고, 알기 쉬워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공공 기관의 언어가 절대 어려워서는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부나 지자체, 그리고 기타 공공 기관의 각종 민원 서식이나 공고문, 보도자료, 안내문 등은 국민들의 삶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공문서는 교육, 주거, 재산 등의 분야에서 국민 생활에 꼭 필요한 제도와 혜택을 담고 있으므로, 공문서 내용을 잘못 이해하거나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경우 국민들의 생명, 건강, 재산상에 치명적인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 뿐만 아니라 어려운 한자어나 외래어 투성이의 정책 용어나 행정 용어가 국민과 민원 처리 공무원들과의 소통을 막고 불안감이나 좌절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일반 국민들뿐만 아니라 공무원들조차도 공문서에 쓰이는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일반 국민 1,000명과 공무원 102명을 대상으로 공공용어 140개에 대한 이해도를 조사한 <공공용어 대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이 잘 모르겠다고 응답한 용어는 97개, 공무원 스스로도 잘 모르는 말이라고 응답한 용어는 81개나 되었다. 마땅히 내용을 표현할 단어가 없어서 잘 쓰지 않는 말 중에서라도 찾아 쓰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용어 중에는 사전을 찾지 않으면 무슨 뜻인지 알기가 어려운 한자어나 줄임말, 외래어, 로마자 표기 등이 뒤엉겨서 나타난다. 


 한자어의 경우 ‘성료하다, 개서하다, 징구하다, 궐위하다, 차폐, 계상, 예가’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다, 새로 고쳐 쓰다, 요구하다, 직책이나 자리가 비다, 가려 막고 덮다, 계산하여 (장부에) 올리다, 미리 정해 놓은 가격’ 등 이들 한자어를 대신해서 사용할 만한 쉬운 표현이 있는데도 굳이 어렵고 낯선 말들을 사용하는 이유를 선뜻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예비타당성’이나 ‘정부출연연구기관’이란 말도 쉽지 않은데 이를 일반 국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기는커녕 줄여서 ‘예타’나 ‘출연연’이라고 쓰는 것을 보면 공문서를 통해 국민들과 소통하고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소통을 막고, 정보를 차단하려는 것인지 애매할 지경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결합되는 단어의 뜻 그대로 해석되지 않는 외래어나 로마자로 된 줄임말이다. 한자어의 경우 사전 검색을 통해 그 의미를 찾아볼 수는 있으나 ‘오픈 캠퍼스, 데모 데이, 넷-제로, 하방 리스크, 메이커 교육’처럼 외래어나 외래어에 한자어가 결합되어 새로운 의미를 갖는 경우는 해당 분야의 지식이 없는 상황이라면 그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 


 특히 요즘 공공 기관 보도자료를 보면 경쟁이나 하듯 앞다투어 정책이나 협약, 조직, 사업 등의 이름을 나타내는 데 로마자 약어를 쓰고 있다. ‘bottom-up, Fast-Track, As is – To be, ASF, ODA, ETRI, API, O2O, B2B, PEF, HMR, TF’ 등 무엇에 대한 약어인지도 알 수 없고, 암호처럼 느껴져 그 뜻을 추정하기가 어려운 로마자 약어들은 우리 국민의 알 권리를 짓밟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도 ‘AI’, 조류인플루엔자도 ‘AI’로 표기하며, 나들목도 ‘IC’, ‘IC카드’에 쓰이는 집적회로도 ‘IC’로 표기하는 등 철자는 동일한데 다른 의미를 나타내는 말들이 계속 늘어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국가나 지자체에서 새로운 정책을 만들거나 사업을 추진할 때 새로운 기술과 개념을 받아들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생소한 외국어나 한자를 쓰게 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쓰는 사람들조차도 제대로 뜻을 이해하기 힘든 말을 공적인 문서에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자기도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그 의미를 상대방에게 설명하고,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공공언어는 원만한 소통을 통해 국민과 정부, 공공기관이 화합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공익 언어’로서 기능을 해야 한다. 어려운 말로 정보 전달에 제약을 가하고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화합에 방해가 되는 ‘공해 언어’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쉬운 말로 쉽게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중요한 정책이나 사업에 대한 정보에서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하고, 공평한 기회 제공을 통해 국민들의 삶에 보탬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쉬운 언어로 공공 언어의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게다가 공공 언어만 쉽게 써도 약 3,431.1억 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도 어려운 공공 언어를 쓰는 습관을 하루빨리 버려야 할 것이다. 공공 언어가 누군가에게는 암호로 느껴져 소외감과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진정한 공공의 언어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