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신웅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중문학)]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이런들 또 어떠하리, 저런들 또 어떠하리' 고려조 말기 대학자이자 최고 충신으로 꼽히는 포은 정몽주, 조선 개국 공신이자 3대왕으로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닦은 것으로 평가받는 태종 이방원의 유명한 시조(時調) 첫 구절이다.
너무도 유명한 이 두 시조를 난해한 의미의 한자문장(漢子文章)을 쉬운 한글로 번안(飜案)한 대표적 작품으로 소개한다. 다시 설명하겠지만 두 시조는 '한자를 닮은 한글'이자 '한글을 닮은 한자'의 좋은 본보기다. 우리가 주제로 삼고 있는 '한국사 용어, 이젠 우리말로' 캠페인에 메시지를 던진다. '어려운 한자 한국사 용어의 한글화' 문제의식과 관련, 한자와 한글을 서로 배척하는 차원을 넘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 융합적 차원의 접점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근거를 제공한다. 한글과 한자가 조응( 照應)하는 대목이다.
우리는 정몽주와 이방원의 시조를 대부분 한글로만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인물의 시조는 한글로만 먼저 발견됐다. 포은집(圃隱集), 해동악부 (海東樂府), 청구영언(靑丘永言) 등에서 두 시조의 한자 원본이 발견된 것은 한글번역본 발견 그 이후의 일이다. 사실 이 부분만 보더라도 우리가 우리 역사를 바라보면서 한자에 대해 가졌던 생각, 또 한글에 대해 가졌던 생각을 달리 가질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한자와 한글은 우리 역사에서 과거 오래전부터 '상부상조'해왔다는 점이다. 한자의 본 의미에 가장 가까운 뜻의 한글이 상용화했다는 것을 시조 등 문학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작금의 많은 역사학(歷史學) 연구자들이 한자로 표기된 역사용어를 한글로 번역하는 노력들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 국학의 정통성(精通性) 확보에 큰 도움이 되는 연구 활동으로 판단되며, 매우 바람직한 현상으로 사료된다.
동일한 전공자는 아니지만 한자한문 관련전공(중국문학)자인 본인도 오랜 세월 그간의 연구와 강의 중에 관심을 가졌던 분야이기도 하지만, 혹여 지금도 애쓰고 있는 역사학자 그 분들 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 본 원고를 우선은 한문학적(漢文學的) 측면에서 감히 게재(揭載)함을 널리 양지 바란다.
한자가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된 시기에 대한 수많은 학설이 있지만, 대체로 한자가 중국으로부터 최초도입은 삼한시대(三韓時代)로 보고 있다. 물론 그 시기는 한자의 상용시기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한자가 상용된 시기는 285년 백제사람 아직기(阿直岐)가 일본에 가서 일본왕자에게 한자를 가르쳤고 그 후 100여년 후에 백제의 박사 고흥(高興)이 한자(漢字)로 된 역사서, 서기[書記]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고 이어, 고구려는 414년에 장수왕이 세운 ‘광개통대왕비(廣開土大王碑)’의 한자비문(漢字碑文)으로 미루어 거의 같은 시기로 볼 수 있으며 그 후 신라에서도 545년에 진흥왕이 아찬 거칠부((阿飡 居柒夫) 등 여러 학자들로 하여금 역사관련 서적들을 수찬(修撰)토록했다.
그러므로 한자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상용(常用)된 시기는 3~4세기, 즉 삼국시대로 보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그 이후 후대로 오면서 수많은 왕조와 학자들도 그토록 어려운 한자를 보다 쉬운 한글로 바꾸려고 노력했던 결과 끝내는 한글화된 한자까지로 변형시키려고 숱한 각고(刻苦)의 노력과 연구를 해왔다. 그 성과로,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빌려 한자를 우리말로 쉽게 표기했던 소위, 이두문(吏讀文)이 드디어 출현하여 10세기 초에 이르러서 통일신라시대 학자들은 향가(鄕歌)의 표기까지도 이두문(吏讀文)으로 사용함으로써 이른바 ‘이두문학(吏讀文學)‘까지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자의 난해성은 여전히 계속되어 왔다. 그러다가, 고려 말·조선 초에 나타난 우리의 고유한 정형시(定型詩)를 보다 한자의 표기와 가까운 평시조, 엇시조 및 사설시조로 바꾼 ‘시조문학(時調文學)’이 나타났다., 이때부터 비로소 한자의 뜻과 한글의 표기가 가장 가까운 상황에 도달되었다고 본다. 그리하여 우선은 첫 번째 주제로 한자의 본 의미에 가장 가깝거나 적어도 거의 한글화된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와 이방원(李芳遠)의「하여가(何如歌)」를 원문 및 한역문(韓譯文)을 함께 소개해보기로 한다.
두 작품에 기술된 한자들은 모두 원래의 의미 그대로 상용되는 한글로 쉽게 번역되었으며, 동시에 한시(漢詩) 문장의 어순(語順) 역시 대부분 번역된 한글문장의 어순과 큰 차이 없이 전개되었다. 또한 이 두 작품의 한시문장(漢詩文章)은 한자나 한글에 대한 어문학적(語文學的) 전문지식 없이도 누구든지 읽을 수 있으며, 그 의미까지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결국 본고의 전체적 주제는 각 작품 속에 기술된 한자에 대한 한글로의 번안(飜案)이 모두 한문학적(漢文學的) 측면에서 기술된 내용임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두 작품의 한자원문과 한글풀이 또한 향후 역사학자들이 한자로 표기한 수많은 역사어휘(歷史語彙)에 대한 한글번역작업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다음 호에서는 선대(先代) 유명 성현(聖賢)들이 지은 다양한 장르의 한자문장(漢字文章) 번역 작품들을 문학적 관점에서 계속 살펴보기로 한다.
# 강신웅(姜信雄) 경상국립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교수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소르본(Sorbonne)대학에서 인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계명대학교·대구대학교 교수를 거쳐 경상국립대학교 인문대학 교수로 35년간 강단을 지켰다. 재직 시 전국 국립대학교 강의평가 최우수 교수와 전국 국립대학교 연구업적 최우수 교수로 선정됐다. 경상국립대학교 인문대학장을 역임했으며, 최근까지 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를 지냈다. 특히 국내외 인문학강좌 1000회를 달성하는 등 80세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