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장내미생물 환경이 우리 몸 전반에 다양한 영향을 끼치며, 특히 장내 미생물의 구성이 인간의 면역체계와 암의 발생 및 치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장내미생물을 이용한 치료법과 보조제로서의 적용 가능성 등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총장 임기철)은 의생명공학과 박한수 교수와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박숙련 교수 공동연구팀이 대변 이식(FMT)을 통해 고형암 환자의 면역항암제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세계 최초로 발표했다고 밝혔다.
면역관문 단백질들 간의 상호작용을 조절하여 환자의 면역시스템을 활성화하는 ‘면역항암치료’는 표준 항암 치료법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지만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암종의 약 20~30% 환자에게서만 면역항암제 치료 효과가 나타나며, 그중 대부분은 면역항암제에 내성이 생겨 암이 재발하는 한계가 있다.
최근 면역항암제에 내성이 생긴 악성흑색종 환자의 장내 미생물 구성에 대변 이식을 통해 변화를 일으키면 면역항암제 치료 반응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공개되면서 대변 이식을 활용한 항암치료법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으나 현재까지 간암, 위암, 식도암 등 전이성 고형암에 대해서는 대변 이식에 의해 면역항암제 치료 효과가 향상될 수 있다는 임상 연구 결과는 없었다.
GIST-서울아산병원 공동연구팀은 면역항암제 내성이 생긴 간암, 위암, 식도암 등 4기 고형암 환자 13명을 대상으로 면역항암제 반응 환자의 대변을 이식한 후, 면역항암제 치료를 다시 실시하였다.
그 결과, 1명의 전이성 간암 환자에게서 대변 이식 후 암 크기가 절반에 가까운 48%가 감소해 부분 관해가 나타났고, 5명의 전이성 암 환자는 대변 이식 후 암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안정 상태를 보였다. 이를 통해서 대변 이식을 통해 면역항암제 내성 환자 13명 중 거의 절반의 환자에게서 면역항암제 효과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연구팀은 분변 속 다양한 균주들 중에서 어떤 균주가 면역항암제 치료 효과에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기 위해 분변 메타지놈(Metagenome) 분석을 진행하였다. ‘Prevotella merdae’라는 종(species)이 치료 효과가 있는 유익균임을 확인하여 발굴하였고, 공여자 분변에서 해당 균주(strain)를 분리하여 ‘Prevotella merdae Immunoacits’라는 이름을 최초로 붙였다. 이후 해당 유익균이 T 세포의 분열과 세포독성 능력을 증진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마우스 모델을 활용한 전임상연구를 통해 암 성장을 억제하고 면역항암제 효능을 높인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또한, 대변 이식을 했음에도 치료 효과가 좋아지지 않았던 환자들로부터 두 종의 유해균인 ‘Bacteroides plebeius’와 ‘Lactobacillus salivarius’를 발굴하였고, 동일한 실험을 통해 T 세포의 분열과 세포독성 능력을 억제하는 한편, 암 성장 또한 촉진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세 균주 간의 조합이 면역세포의 활성화 정도와 상관관계가 있으며, 유익균이 있더라도 유해균이 함께 존재할 경우에는 면역항암제 치료 효능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단일 균주를 넘어서 장내 미생물 조합이 면역 반응 및 항암 치료 효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GIST 의생명공학과 박한수 교수는 “기존에는 단일 균주의 효능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으나, 본 연구를 통해 단일 미생물보다 미생물 군집에 의해 면역항암제 치료 반응성이 중요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며 “앞으로 장내 미생물 조합과 암면역반응 최적화 연구를 통한 암 치료 결과의 향상을 위해 유익균을 높이고, 유해균을 낮추는 최적의 미생물 군집 연구 개발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박숙련 교수는 “암세포가 면역항암제에 대한 내성을 가지게 되면 적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데 이번 연구는 고형암 환자에게서 면역항암제 내성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면서 “앞으로도 면역항암제 내성 극복을 위한 새로운 치료법 개발을 위해 장내 미생물 연구를 이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GIST 의생명공학과 박한수 교수와 서울아산병원 박숙련 교수가 지도하고 GIST 의생명공학과 김윤재·김수정 박사과정생이 함께 수행한 이번 연구는 국립암센터 과제와 GIST 연구원 과제, 한국연구재단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았으며, 국제학술지 《셀 호스트 앤 마이크로브(Cell Host & Microbe)》에 2024년 7월 25일 온라인 게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