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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스페인 보물함대 '은 물대야'는 19세기 네덜란드 민족주의 조작품"

주스예 반 베네콤 박사팀 
납 동위원소 분석 입증

 

 

현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 Amsterdam)에 보관된 은 원료의 물 대야(basin)가 1628년 네덜란드 서인도 회사(WIC)가 노획한 스페인 보물 함대에서 빼앗은 은으로 만들어졌다는 '전설'은 사실이 아니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과학전문매체 '피즈오아르지' 2025년 6월 7일자 보도에 따르면 주스예 반 베네콤(Joosje van Bennekom) 박사 연구팀은 '문화유산저널(Journal of Cultural Heritage)' 7~8월 최신호(통권 74호)에 이런 내용의 논문(원제목 "Historical narratives: Was Dutch admiral Piet Heyn’s silver basin made from ``treasure fleet'' silver?")을 발표했다.

 

납 동위원소 분석결과, 은 세공 물 항아리(ewer)는 스페인 보물 함대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멕시코 은으로 만들어졌지만, 물 대야의 경우 다양한 출처에서 온 혼합 은으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은 세공 물 대야가 전적으로 포획된 스페인 은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과학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고, 19세기에 민족주의 신화 제작의 일환으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는 게 논문의 결론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628년 '네덜란드 서인도 회사(WIC)' 소속의 제독 겸 사령관 피에트 하인(Piet Heyn, 1577-1629) 중장은 은, 금, 진주, 향신료, 안료, 십자가 등을 싣고 귀환하는 스페인 보물 함대를 요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선상에 있는 은화의 가치는 1,150만 길더였으며, 이는 오늘날 564억 유로에 필적하는 수준이다. 당시 '보물 함대 은'을 사용해 만들었다는 물 대야는 역시 '보물 함대 은'으로 만들었다는 물 항아리와 함께 세트로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물 항아리 위에는 은세공 장인 프란시스코 엔리케 (Francisco Enrique)가 물 뿌리개를 만들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Fo ENRIQZ"를 포함해 창조에 대한 맥락을 제공하는 다양한 특징과 비문이 있다. 또한, 회화적 특징은 헤라클레스의 두 기둥 사이에 소문자 "o"와 대문자 "M"으로 구성됐다는 점이다. 후자의 특징은 물 항아리가 1606년에서 1628년 사이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나타낸다.

 

네덜란드어로 된 물 항아리에 새겨진 비문에 따르면, "이 물 항아리는 1628년 9월 16일 피에트 하인 중장이 정복한 스페인 보물 함대에서 파생됐다(원문: "Dese kanne is Gekomen uyt de Siluere Vloot Verouert bijden Heer Luijt Admirael Pieter Pieters Heyn, Den 16den Sept 1628")"고 돼 있다.

 

대조적으로 물 대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만들어졌다. 특징은 '헤이그'라는 도시를 가리키고 있으며, 비문에는 "1684년 미로의 방(Chamber of the Maze)에서 특허를 받은 서인도 회사의 관리자"라고만 적혀 있다. 미로의 방은 WIC의 통치 기관이었다.

 

세트의 일부로 추정 됨에도 불구하고, 물 대야는 1808년까지 역사 기록에 언급되지 않고, 1808년까지 "은색 물 항아리와 물 대야, 피에트 하인 제독이 보물 함대를 추월 할 때 스페인 제독의 선실에서 처음 발견된 물 대야, 그 후 물 대야는 나중에 명예롭게 이뤄졌다"고 돼 있는데 "명예"라는 단어는 물 대야가 하인 제독과 스페인 보물 함대의 포획을 기리기 위해 나중에 추가 된 것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1878년까지, 이런 내용은 인기있는 잡지에 실렸는데, 물 대야와 물 항아리는 모두 보물 함대에서 포획한 은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진술의 진실성을 확인하고 수수께끼 같은 분지가 실제로 보물 함대의 은으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반 베네콤 박사 연구팀은 아메리카 대륙, 네덜란드 공화국 및 여러 유럽 국가의 물 대야, 하수구 및 기준 은에 대한 납 동위원소 비율(LIR) 분석을 이용했다.

 

은에는 일반적으로 납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은의 출처를 결정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16세기와 18세기 사이에 가장 큰 두 개의 은 생산지는 볼리비아의 포토시 광산과 멕시코의 일련의 광산이었다. 유럽의 주요 은 광산 생산 중심지로는 보헤미아.야치모프(체코), 에르츠게비르게(독일), 티롤(오스트리아)의 슈바츠, 노이솔(슬로바키아)의 헝가리 광석 산맥이 있다.

 

16세기 중반에는 중남미 은이 유럽의 은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반 베네콤 박사는 "네덜란드 가정 물품들은 종종 다양한 은을 혼합했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추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은의 재용해와 재사용은 네덜란드와 세계 역사의 모든 시대에 이뤄져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물 항아리와 물 대야에 사용된 은이 순수한 중남미, 혼합 또는 순수한 유럽 은인지 확인하기 위해 알려진 출처를 가진 참조 유물이 사용됐다.

 

분석결과 물 항아리는 실제로 멕시코 은으로 만들어졌지만 보물 함대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됐니다. 하지만 전설에도 불구하고 물 대야는 혼합 은으로 만들어졌다.

 

반 베네콤 박사는 "결국, 약간의 혼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매우 논리적으로 보인다. 네덜란드에서 중남미 은을 재작업하면 네덜란드 작업장의 은에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길 수 있다"고 한다.

 

결국 논문은 "하인 제독의 물 대야가 보물 함대 은으로 만들어졌다는 전설은 아마도 19세기 신흥민족 국가인 네덜란드가 공통의 역사 이야기와 관련한 유물을 통해 민족주의를 배양했기 때문에 시작됐을 것"이라며 "따라서 물 항아리는 네덜란드 공화국의 '승리'를 진정으로 구현하지만 '은 물 대야'의 신화는 역사적 사실에 뿌리를 두기보다는 시대의 산물"이라고 결론 내렸다.